당신은 떠났고 나는 여전히 그날에 머물러있다. 몸통 한 가운데에는 큰 구멍이 뚫려있고, 매일 비슷한 감정들이 들락날락한다. 절망, 후회, 그리움. 텅 빈 곳의 가장자리를 너덜거리게 만드는 날카롭고도 아픈 것들. 아직 작별 인사를 다 건네지도 못했는데도 나는 내 이름을 부르는 곳으로 돌아가 봐야 한다. 그곳에선 당신을 닮은 사람을 보아도, 당신과의 추억이 떠...
'졸리다'가 누군가의 손가락을 오그라들게 만드는 단어일 거라곤 생각치도 못했다. 평소처럼 수업이 끝나고 친구와 점심을 먹었다. 텅 비어있던 배가 따뜻해지니 어김없이 잠이 솔솔 밀려왔다. 식곤증은 자연의 섭리가 아닐까. "아 졸리다." 본능에 따라 혼잣말을 했다. 앞만 보고 걷던 친구가 갑자기 나를 향해 고개를 홱 돌리더니 인상을 찡그렸다. 말도 안 되는 걸...
'인간의 평균 수명이 100세 이상으로 늘어날 것이란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와, 오래 살 수 있다! 어릴 적, 나는 이런 류의 기사를 접할 때면 늘 환호했다. 오래 사는 것이 마냥 좋은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때의 나와 현재의 나 사이에는 아주 큰 간극이 생겼다. 요즘에는 비슷한 내용을 접하면 주저앉고 싶은 순간이 많다. 지금도 이렇게 버거운데 남은 ...
"세상에, 1X학번이요? 와 어떡해. 그럼 몇 년생이에요?" 학번이 한참 차이 나는 선배부터 얼마 차이 나지 않는 선배들까지 한결같이 저런 반응이었다. 눈을 휘둥그레 뜨고는 나에게 당대 유행했던 아이돌이나 드라마를 아냐며 물어보기도 했다. 당연히 알죠. 그렇게 대답하면 아니, 아가(…)가 그걸 대체 어떻게 아냐며 신기해했다. 그럴 때마다 외계인이 된 것 같...
* 예전에 썼던 글을 조금 다듬어 다시 업로드합니다. 수영을 처음 배웠던 순간을 기억한다. 물에 뜨려고 안간힘을 쓰니까 오히려 가라앉고 말았다. 이상했다. 열심히 하니까 되레 원하던 결과에서 멀어지다니.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이번엔 몸에서 힘을 쭉 빼보았다. 그제서야 물 위에 둥둥 뜰 수 있었다. 얼마 안 되는 거리지만 그래도 헤엄칠 수 있게 되니 친구...
시작은 초등학교 때 우연히 나간 백일장부터였다. 백일장. 당시 '장'으로 끝나는 말이라고는 시장, 오일장, 통장밖에 몰랐던 내게 그 단어는 무척 신비롭게 들렸다. 마치 그동안 존재조차 몰랐던 대륙에 대해 알게된 느낌이었다. 게다가 수업까지 땡땡이칠 수 있다니! 나는 손을 번쩍 들어 참가 신청을 했다. 처음 나간 백일장 날엔 비가 왔다. 야외에서 진행될 예정...
1학년 여름 방학을 앞두고 느낀 건, 대학생의 방학은 매우 길다는 것이었다. 7월 중순쯤 기말고사를 끝내고 1달 정도 쉬던 고등학생 때와 달리 대학 방학은 6월 중순부터 8월 말까지다. 종강을 일찍 할수록 더 빨리 해방감을 맛볼 수 있다. 시간표를 아무 생각 없이 짠 바람에 내 1학년 1학기 기말고사 마지막 날은 정말 고되었다. 하루에 시험 4개를 봤는데,...
봄이 왔다 "어 지금 거기 서 봐. 조금만 더 왼쪽으로. 찍는다!" 어색한 표정으로 친구의 휴대폰 뒷면을 응시했다. 친구가 장난스럽게 스마-일, 이라고 말하는 바람에 웃음이 터졌다. 누군가의 피사체가 되는 건 꽤나 쑥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늘상 사진 찍는 걸 거부해왔다. 그럼에도 내가 친구의 카메라 렌즈를 가만히 바라본 건, 이 풍경 속에 내가 머물렀다는 ...
종강을 했다. 대학에서의 마지막 시험을 치르고 나서 침대에 그대로 쓰러졌다. 상반기를 어떤 마음으로 보냈는지 회상하노라면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머릿속이 텅텅 빈 상태로 한동안 멍하니 있게 된다. 그만큼 매우 바쁘게 지냈나보다. 학기와 인턴을 병행하는 게 녹록지 않다는 것을 몸소 체험했다. 주변에서 그런 사례를 꽤 봤기에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라...
대학 가면 팽팽 놀기만 한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성적이 나온 날, 눈물을 머금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면 누구든 공부한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근거 없는 자신감만 쌓여서 더 대충 하게 되지만. 학교 커뮤니티엔 시험 기간마다 밤을 새웠다는 글이 수두룩하게 올라왔다. 잠이 많은 나는 태어나서 밤을 단 한 번도 새워본 적이 없었다. 소중한 수면시간을 바치면서까지 시험...
기억 하나 나는 때때로 즉흥적이다. 자취방을 한 군데만 보고 바로 결정했다. 보증금 500에 월세 45. 저렴하지도 않고 비싸지도 않았다. 풀옵션 5평 원룸. 그리 좁지도 넓지도 않았다. 구축도 아니고 신축도 아니었다. 그 방은 모든 게 적당했다. 그게 좋았다. 집 바로 옆에 슈퍼가 있다는 점까지도. 집에 가는 길엔 가파른 언덕이 있었다. 친구들을 데리고 ...
우리 집은 어디인가 「QnA」라는 책에서 질문 하나를 읽었다. 집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집은 편한 곳이지. 기계적으로 그렇게 적으려다가 멈칫했다. 잠깐만. 우리 집은 진짜 편한가? 그 생각은 이내 펜을 내려놓게 만들었다. 뭔가 이상했다. 생각해보니 집에 있는 게 별로 편하지 않았다. 듣고 있기만 해도 귀가 산산조각 날 것 같이 폭력적이고 무신경한 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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